포항은 대한민국 동해안의 대표 도시로, 오늘날에는 철강 산업과 해양 관광지로 유명합니다.
그러나 그 뿌리를 들여다보면 수많은 전설과 지명이 얽혀 있으며, 이 속에 포항 사람들의 삶과 정신세계가 담겨 있습니다. 특히 포항의 상징이라 할 수 있는 영일만은 바다와 태양, 풍요와 안녕을 기원하는 이야기로 가득 차 있습니다.
이번 글에서는 영일만과 포항 지역에 전해 내려오는 전설과 지명 유래를 민속·역사적 맥락 속에서 풀어보고, 그 속에 담긴 문화적 의미를 살펴보겠습니다.
영일만의 지리와 이름의 유래
영일만은 포항 동쪽에 펼쳐진 큰 만으로, 파도가 거세기로 유명한 동해에서 비교적 잔잔한 항구 역할을 해왔습니다. ‘영일(迎日)’이라는 이름은 “해를 맞이한다”는 뜻을 담고 있는데, 실제로 이곳은 우리나라에서 가장 먼저 일출을 볼 수 있는 장소 중 하나입니다. 신라 시절에는 ‘영일현(迎日縣)’이라는 행정 명칭이 있었는데, 이는 국가적 차원에서 동쪽 바다의 성스러움을 인정했음을 보여줍니다. 옛 문헌에 따르면 신라 왕실은 매년 해맞이 의례를 치르며 국운을 기원했다고 전해집니다. 이러한 전통은 지금도 ‘호미곶 해맞이 축제’로 이어져, 수많은 사람들이 새해 첫날 영일만 일출을 보며 소망을 비는 풍습으로 남아 있습니다.
포항의 전설과 설화
포항은 바다와 떼려야 뗄 수 없는 도시답게 수많은 전설을 간직하고 있습니다. 대표적인 것이 용왕 전설입니다. 옛날 어부들이 풍랑에 시달릴 때 바다에 제를 지내며 용왕께 기도를 올리면, 거센 파도가 잦아들고 풍어를 얻었다는 이야기가 전해집니다. 이 전승은 지금도 매년 열리는 해신제에 반영되어, 바다를 지배하는 신령에게 풍요와 안전을 비는 의식으로 계승되고 있습니다.
또 하나 유명한 이야기는 호미곶의 전설입니다. 호미곶은 ‘호랑이 꼬리처럼 생긴 땅’이라는 뜻을 지니는데, 풍수지리적으로도 국가의 기운을 북돋는 장소로 여겨졌습니다. 전설에 따르면 이곳에서 정성껏 제를 지내면 나라가 태평해지고 마을이 번영한다고 믿었습니다. 오늘날 설치된 거대한 손 조형물은 단순한 관광 자원이 아니라, 과거의 신앙과 전설을 현대적으로 재해석한 상징물이라 할 수 있습니다.
또한 구룡포(九龍浦)라는 지명에는 아홉 마리 용이 바다에서 승천했다는 설화가 얽혀 있습니다. 용들이 하늘로 오를 때 바람과 파도가 크게 일었고, 주민들은 그 광경을 신성시하며 마을 이름으로 남겼다고 합니다. 이 전설은 바다를 단순한 생업의 공간이 아닌, 초자연적 존재와 교감하는 성스러운 장소로 인식했음을 보여줍니다.
지명에 담긴 역사와 문화적 의미
포항이라는 지명 자체에도 깊은 의미가 있습니다. ‘포항(浦項)’은 바닷가 마을을 뜻하는 ‘포(浦)’와 거점, 고을을 뜻하는 ‘항(項)’이 합쳐져 ‘바닷가의 중요한 고장’이라는 뜻을 담고 있습니다. 이는 포항이 예로부터 동해안의 어업과 교역의 중심지였음을 알려줍니다. 실제로 조선시대 기록을 보면 포항 일대는 왜구의 침략을 막는 중요한 방어선이자 어업의 중심지로 묘사되어 있습니다.
영일만 주변의 지명에도 흥미로운 설화가 담겨 있습니다. ‘장기(長鬐)’라는 지역은 ‘긴 등지느러미’를 뜻하는데, 전설에 따르면 이곳 앞바다에서 잡힌 거대한 물고기의 모습에서 비롯되었다고 전합니다. ‘호미곶’은 앞서 언급했듯 호랑이 꼬리를 닮아 붙여진 이름이며, 이는 단순한 지형 묘사가 아니라 풍수적 해석과 민간 신앙이 어우러진 결과라 할 수 있습니다. 이처럼 포항의 지명은 단순한 지리적 표현이 아닌, 당시 사람들의 세계관과 생활 방식을 보여주는 언어적 유산입니다.
영일만과 포항의 전설, 그리고 지명에는 단순한 옛이야기를 넘어 지역민의 삶과 믿음, 그리고 역사가 고스란히 담겨 있습니다. 해를 맞이하는 신성한 바다, 용왕에게 풍요를 기원하던 제사, 그리고 호미곶과 구룡포에 전해지는 신화적 상징은 오늘날에도 포항의 정체성을 이루는 중요한 요소입니다. 포항을 여행할 기회가 있다면 바다 풍경만 즐기지 말고, 그 속에 깃든 전설과 지명 이야기를 함께 떠올려 보시기 바랍니다. 그렇게 한다면 포항은 단순한 항구 도시가 아니라, 전통과 신앙, 이야기가 살아 숨 쉬는 문화의 도시로 다가올 것입니다.